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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어둠 속에서 빛나는 스마트폰 불빛처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틈새를 날카롭게 비춘다. 2019년 칸영화제를 휩쓴 이 작품은 단순한 수상 이력을 넘어,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일상에 숨어든 기생충처럼, 관객의 의식 속에 서서히 파고들어 불편한 진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기 때문이다.영화는 반지하 집에 사는 기우(최우식)네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들의 생활은 마치 지하철 환풍구 틈새로 비집고 자란 잡초와도 같다. 그들은 피자 박스 접기, 와이파이 훔치기 등 삶의 틈새에서 생존을 모색한다. 그러다 기우가 박사장(이선균) 집의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급격한 전환을 맞는다.봉준호 감독은 두 가족의 대비를 통해 계급 간 격차를 예리하게 ..
이창동 감독의 '시'는 마치 한 편의 서정시처럼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2010년 발표된 이 작품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시(詩)'의 본질을 탐구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영화는 67세의 양미자(윤정희)가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손자 종욱(이다윗)과 함께 살며 파트타임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미자는 우연히 문화센터의 시 창작반에 등록하게 되고, 이와 동시에 손자가 같은 학교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두 사건은 미자의 삶을 뒤흔들며 영화의 주요 축을 형성한다.이창동 감독은 '시'를 통해 언어의 한계와 가능성을 탐구한다. 점점 단어를 잃어가는 미자와 시를 쓰려 애쓰는 미자의 모습은 ..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마치 정교하게 짜인 시계 장치와도 같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간다. 2022년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단순한 로맨스나 추리물의 틀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복잡한 욕망과 감정의 지도를 그려낸다.영화는 산에서 추락사한 한 남자의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박해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사망한 남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지만, 수사를 진행할수록 그녀에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전형적인 누아르의 궤도를 벗어나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박찬욱 감독은 카메라를 마치 현미경처럼 사용한다. 그는 인물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 손짓, 눈빛까지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1996년,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 있었다. 홍상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다. 이 영화는 마치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한국 영화의 고인 물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 파문은 지금까지도 우리 영화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영화는 대학 강사 혁규(김은수)와 그의 친구 동우(박진성)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두 사람의 일상적인 대화와 만남,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과의 관계가 영화의 주된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이 단순해 보이는 일상의 표면 아래에는 복잡한 욕망과 갈등, 그리고 실존적 고민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홍상수 감독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문법을 선보인다. 그의 카메라는 마치 숨어서 훔쳐보는 듯한 관찰자의 시선을..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는 1997년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 영화는 마치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90년대 한국 사회의 표면을 깨고 그 아래에 숨겨진 불안과 혼란을 드러낸다.영화는 군 제대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막동(한석규)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는 우연히 만난 폭력조직의 보스 비프(문성근)에게 매료되어 그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동시에 그는 비프의 애인 미애(심은하)와 은밀한 관계를 맺으며, 점점 더 복잡한 상황에 휘말린다. 이창동 감독은 '초록물고기'를 통해 90년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급속한 경제 성장의 이면에 존재하는 소외와 폭력, 그리고 기존 가치관의 붕괴가 영화 전반에 걸쳐 깔려있다. 막동의 방황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장선우 감독의 '꽃잎'은 1996년 한국 영화계에 폭풍을 몰고 왔다. 이 영화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상흔을 다루며, 역사의 어두운 이면을 가차 없이 파헤친다. '꽃잎'은 단순한 영화를 넘어,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에 깊숙이 박힌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가족을 모두 잃은 소녀(이정현)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녀는 정신적 외상으로 인해 말을 잃고, 서울 거리를 떠돌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한 남자 장씨(문성근)를 만나게 되고, 이를 통해 과거의 기억이 서서히 되살아난다.장선우 감독의 연출은 대담하고 실험적이다. 그는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소녀의 파편화된 기억과 트라우마를 시각화한다. 특히 광주에서의 참혹한 장면들은 마치 악몽과..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는 2001년 한국 독립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 영화는 세 여성의 일상을 통해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과 여성의 위치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여성의 연대와 독립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보여준다.영화는 태희(이요림), 혜주(배두나), 비구(옥지영) 세 여성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들은 각자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가졌지만, 우연히 한 집에 모여 살게 된다. 태희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방황하는 20대 후반의 여성이고, 혜주는 레즈비언 화가, 비구는 열여덟 살의 가출 소녀다. 이들의 동거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과 갈등, 그리고 화해로 이어진다.정재은 감독의 연출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따뜻하다. 그는 과도한 드라마나 감정..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의 삶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흑산도 유배지에서 어부 창대와 함께 물고기를 연구하며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정약전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이 영화는, 겉보기에는 잔잔한 물결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로는 깊은 통찰의 물살이 흐르고 있다.영화는 1801년 신유박해로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설경구)이 어부 창대(변요한)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둘의 만남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어색하다. 양반 사대부와 천민 어부. 그러나 이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이 '자산어보'라는 결실을 맺게 된다. 정약전은 창대에게 글을 가르치고, 창대는 정약전에게 물고기에 대해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둘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계급의 벽을 넘어 진정한 우정을 쌓아간다.이준익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