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에르만노 올미의 '우든 크로그' 리뷰

1978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에르만노 올미의 '우든 크로그'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특별한 경험을 했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19세기 말 이탈리아 롬바르디 지방의 농민들의 일상이 마치 커다란 프레스코화처럼 펼쳐진다. 그들의 노동, 사랑, 고통, 그리고 작은 기쁨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강렬하게 우리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올미의 카메라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농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처럼 섬세하게 포착한다. 자연광만을 사용한 촬영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새벽녘 농가의 부엌에서 일하는 여인들, 들판에서 옥수수를 수확하는 사람들, 저녁 식사를 위해 모인 대가족의 모습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시각적 시(詩)가 된다.

영화의 중심에는 여러 소작농 가족들의 이야기가 느슨하게 얽혀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족, 결혼을 준비하는 젊은 연인들, 생존을 위해 매일의 고된 노동을 견디는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태피스트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학교에 가기 위해 나무 신발을 깎아야 했던 소년의 이야기는, 교육을 통한 계급 이동의 가능성과 그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올미는 이 영화를 통해 사라져가는 세계를 기록하고자 했다. 산업화 이전의 농촌 사회, 계절의 순환에 따라 움직이는 삶의 리듬, 공동체적 유대의 마지막 순간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향수어린 기록이 아니다. 감독은 이 공동체가 지닌 구조적 모순도 함께 포착한다.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 교회의 이중적 역할, 가난의 대물림 등이 영화 전반에 걸쳐 섬세하게 암시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노동을 다루는 방식이다. 올미는 농사일의 전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데, 이는 단순한 다큐멘터리적 기록을 넘어선다. 노동의 순간들은 거의 의례적인 성격을 띠며,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력을 드러내는 순간이 된다. 무거운 짐을 나르고, 들판을 갈고, 가축을 돌보는 모든 순간들이 경건한 의식처럼 다루어진다.

영화의 리듬은 느리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이는 계절의 변화와 일상의 반복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변주들 때문이다. 봄의 파종부터 겨울의 도살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이 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결혼식이나 세례식 같은 의례는 이러한 순환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정표가 된다.

사운드의 활용도 주목할 만하다. 올미는 대사를 최소화하는 대신, 자연의 소리와 일상의 소음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새소리, 물소리, 나무 신발이 땅을 치는 소리들이 영화의 청각적 풍경을 구성한다. 이따금 들리는 방언으로 된 대화는 이 공동체의 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한다.

'우든 크로그'는 이탈리아 신사실주의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독특한 미학을 창조했다. 비전문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현장 촬영, 사회적 리얼리즘은 신사실주의의 유산이지만, 올미는 여기에 서사시적 규모와 회화적 아름다움을 더했다.

이 영화가 오늘날에도 강력한 울림을 주는 것은, 그것이 다루는 주제의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노동의 존엄성, 공동체적 연대의 가치, 계급 구조의 억압성, 그리고 인간의 근본적인 생명력은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들이다. 올미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을 탐구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농가의 전경을 비춘다. 그것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동시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현장이다. 이 장면은 올미가 이 영화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을 완벽하게 요약한다. 그것은 사라져가는 세계에 대한 기록이자, 인간 존재의 영원한 순간들에 대한 시적 증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