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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의 말》: 벨라 타르의 묵시록적 백조의 노래

벨라 타르 감독의 2011년 작 《토리노의 말》은 현대 영화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발적이고 명상적인 작품이다. 니체의 일화에서 영감을 받은 이 영화는 세상의 종말을 앞둔 듯한 6일간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과 허무를 탐구한다.

영화는 노철학자와 그의 딸이 황폐한 농장에서 늙은 말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강풍이 끊임없이 불어대는 가운데, 이들의 일상은 점점 더 고립되고 황폐해진다. 타르 감독은 이 단순한 설정을 통해 인간 조건의 본질을 파고든다.

타르의 트레이드마크인 극도로 긴 롱테이크가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각 장면은 평균 4분 이상 지속되며,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특히 말이 마차를 끄는 반복적인 장면들은 존재의 단조로움과 고통을 시각화한다.

프레드 켈레멘의 흑백 촬영은 영화의 묵시록적 분위기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황량한 풍경, 칙칙한 실내, 그리고 끊임없이 불어대는 바람은 모두 세상의 종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는 인물들의 내면적 고뇌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미하이 비그의 음악과 함께, 바람 소리, 말의 숨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인간의 목소리가 영화의 청각적 풍경을 구성한다. 이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닌, 영화의 주제를 강화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토리노의 말》은 대사의 사용을 최소화한다. 대신 일상의 반복적인 행동들 - 옷 입기, 감자 먹기, 물 긷기 등 -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이를 통해 타르 감독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모습을 포착하려 한다.

영화는 철학적 질문들을 던진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연상시키는 반복적인 구조는 삶의 의미와 무의미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점점 더 황폐해지는 세계는 현대 문명의 종말에 대한 암시로 읽힐 수 있다.

타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왜 계속 살아가는가?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세상의 종말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토리노의 말》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관객에게 극도의 인내와 집중을 요구하며, 때로는 불편함과 지루함마저 안겨준다. 그러나 이러한 '지루함'은 오히려 영화의 본질적 주제를 강화하는 요소가 된다.

벨라 타르의 이 작품은 현대 영화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실험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상업적 내러티브의 관습을 완전히 거부하고, 대신 순수한 영화적 체험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려 한다.

《토리노의 말》은 단순한 영화를 넘어선 철학적 명상이자 시각적 시다. 그것은 우리에게 삶의 본질, 시간의 의미, 그리고 인간 존재의 고독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타르의 이 마지막 작품은 현대 영화의 한 정점으로, 앞으로도 오랫동안 영화학도들과 철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논의될 것이다.